홈으로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작성일 : 12-01-05 10:15
목록
미설4(습작)
 글쓴이 : 윤종택
(조회 : 542)  

 상 념

 
오후가 되자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많이 풀렸다. 라디오에서는 늦게부터 눈이 내린다고 예보를 하였지만 벌써 봄이 찾아온 듯 착각하기 좋은 날씨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만 여기저기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다.

 이철민 교장은 난로의 뚜껑을 열고 불쏘시개인 솔잎을 한줌 넣고 그 위에 잘게 쪼갠 장작을 얼기설기 포개어 쌓은 후 제일 위에는 굵직한 참나무 장작을 몇 개 얹고 뚜껑을 덮은 후 아래 부분의 작은 미닫이문을 열었다. 작은 성냥개비의 눈곱만한 붉은 고체는 마찰음과 함께 훅 피어나더니 솔잎을 태우며 연기와 함께 장작으로 번진다.

 함석 연통은 금새 자기 몸을 달군다. 이철민 교장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깊게 빨아 들였다가 내뱉었다. 코와 입에서 나온 연기는 희끗희끗한 머릿결을 타고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반짝이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하얀 운동장에서 반사되어 유리창을 투과한 햇빛은 그의 얼굴을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만든다. 구부정한 모습이 더욱 외롭게 보인다.

 방학이면 매일같이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은 어차피 자기가 도맡기로 공언하였고 더구나 학교 청사 뒤편 건물에는 학교일을 도맡아 하는 흔히, 아이들이 학교아저씨라고 부르는 김씨가 살고 있었기에 걱정할 것이 없었다. 철민은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잘 볶은 보리를 한줌 넣었다.

 사실 방학이 되자마자 집으로 갈 작정이었지만 서울에 있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이 다음 주에 오기로 되어 있어 이번 겨울방학에는 아예 시골에 눌러 앉아 책이나 보면서 그동안 중단했던 서예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교실을 반으로 막은 교장실은 훈훈하다. 난로위의 주전자 뚜껑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구수한 보리냄새를 밀어 낸다. 
 
 3년전 이 시골학교로 전근을 오면서 책상 맨 밑 서랍에 신문지로 꼭꼭 싸두었던 벼루를 꺼냈다. 묵직하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문양이 선명하다. 연적의 물을 붓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원을 그리듯 서서히 팔을 움직였다. 잡념을 버리고 정신을 몰두하려고 노력하였다. 삭삭거리는 소리가 신선하게 들린다. 손가락을 타고 온몸으로 번지는 묵직한 느낌이 차라리 좋다. 물은 모든 치부를 끌어안듯 검정색으로 변해간다.

 묽던 액체가 끈적끈적한 느낌이 든다. 이따금 이철민 교장은 고개를 돌려 밖을 주시하곤 하였다.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와 난로속의 땔감이 타는 소리 이외는 절집이나 다름이 없는데도 누군가 교장실을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이 떠나질 않는다.

 늙으마한 나이에 그것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에 있는 사람이 한 동네서 사는 이성에 집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민한 생각인가? 부정하듯 고개를 흔들면 그 틈을 비집고 기껏 밀어내 뒤꼍에 숨겨 두었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웃집 숟가락도 몇 개인지 안다는 산골 마을에서 소문은 이미 모두 퍼졌을 터이지만 그것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추단하지 못하는 자신이 몹시 싫었다.

 그는 지금껏 교단에 서면서 감성보다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늘 우위에 두었고 그것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그것은 지금 그에게 심한 갈등이고 번민이었다.

 장작불이 많이 사그라 들었는지 주전자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로 뚜껑을 열고 잘 마른 장작을 몇 개 골라 넣었다. 뿌지직거리며 나무의 살결을 태우는 소리가 들린다.

 한지를 책상위에 길게 펴놓고 윷처럼 생긴 누름돌을 위, 아래에 올려 놓았다. 붓을 돌려가며 먹물을 듬뿍 찍어 끝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생각해 두었던‘能書不擇筆’이라는 고사성어를 썼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재료를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몇 년 만에 써보는 글씨인가. 서울 교육계에서는 그래도 알아주었는데 오랜만에 붓을 잡으니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다 쓴 것을 접어서 한쪽으로 밀어놓고 다시 한 장을 펴고 써 내려 갔다. 팔의 흔들림이 크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했다.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것 이외에 다른 생각이 침범하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백지 위를 수놓듯이 직선과 곡선으로 서서히 채워 나갔다. 어림잡아 열장 남짓 같은 글만 반복해서 썼다.

 다시 한 장을 올려놓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설이다. 미소를 지으며 멋쩍은 듯 어깨를 한번 들썩이는 사람은 분명 미설이었다. 하얀 눈을 온통 뒤집어 썼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방울방울 점들이 창밖으로 가득하다. 맞은편 산의 소나무와는 색상이 대비가 되어서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추울텐데 곧장 들어오지 그랬어.”
 
문을 열어 주면서도 안쓰럽다는 듯 보듬는 말투다.
 
“괜찮아요. 오늘은 그래도 따뜻한 편인데요 뭐. 구수한 냄새가 좋은데요?”
 
분홍색 털실로 짠 모자를 벗으며 의자를 당겨 난로 가에 앉는다.

 “붓글씨 쓰셨어요?”
 
책상으로 눈길을 돌리며 미설이 배시시 웃는다.
 
“그냥 시간이 있어서 조금……그런데 언제부터 눈이 내렸지? 조금 전에도 햇살이 있었는데……”
 
“꽤 됐어요. 두 시간 정도는 된 것 같은데요?.”
 
“벌써 그래 되었나. 정말 4시가 넘었네.”

 벽에는 커다란 쾌종 시계가 언제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납작하고 나비처럼 생긴 것으로 이틀에 한번씩은 태엽을 감아야 생명을 유지하는 물건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너무나 조용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이철민 교장은 창가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눈은 아직도 내린다. 모든 생명체의 고단함을 덮어주듯 계속 내린다.

 “늦기 전에 가셔야지.”
 
시야를 운동장에 고정한 채 장승처럼 서 있던 그가 힘들게 한마디 내뱉는다.  미설은 난로만 응시한 채 대답이 없다. 묵묵부답이다. 난로의 열기에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모락모락 옷에서 피어 오르던 수증기도 멈추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또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침묵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아도 같은 공간 안에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겨울은 해가 짧다. 특히 시골은 산이 많아서 해가 더 일찍 기운다. 하물며 눈이 오는 날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철민 교장은 미설의 곁으로 걸어가면서 또 다시 재촉을 한다.
 
“금방 어두워져. 아이들도 기다릴테고……”
 
“네. 일어설께요.”
 
몸을 일으킨 미설은 상기된 모습으로 이철민 교장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현관문을 밀었다.

 “다음 주에 집사람과 아이들이 온다고 그랬어.”
 
뒤통수에 날아와 박히는 말이다. 미설은 처음으로 그가 매몰차다는 생각을 했다. 계단을 내려와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발이 푹푹 빠진다. 눈이 구두 속으로 들어갔지만 아무 느낌도 없다.

 ‘아이들. 집사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더니 이내 뜨거운 액체로 변한다.

 * 다음편에 계속


금수산 12-01-05 15:23
왜 이러케 오래 걸리셨어요??
잘 봤어요...
담편도 빨리 보여주세요..
작가님한테...빨리...는 넘 심했나요???
창작의 고통을 모르는 일인입니다...
윤종택 12-01-05 18:04
깜두 안되는걸 가지고 무지 미안합니다.
빨랑빨랑 써야 되는데 잘 안되어서....... 그래두 읽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좀 더 노력 하겠습니다. ㅎㅎ
사실 할 이야기가 많은데요.  이졸작과 관계에서 말이죠
담에 터 놓겠습니다. 아주 홀라당. 저는요 할 애기가 진짜 많거든요.  애궁~~~
 
목록
 

전체 251
자유게시판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1 마라톤 3(습작) (1) HOT 윤종택 2012-02-03 470
100 마라톤2 (습작) (4) HOT 윤종택 2012-01-27 494
99 마라톤1(습작) (2) HOT 윤종택 2012-01-21 534
98 미설5(습작) HOT 윤종택 2012-01-18 477
97 수고하셨습니다 (1) HOT 하늘천사 2012-01-18 482
96 제8회 알몸마라톤대회 입상자기록 (1) HOT 금수산 2012-01-15 766
95 미설4(습작) (2) HOT 윤종택 2012-01-05 543
94 흑용 HOT 윤종택 2011-12-31 494
93 사랑의 언어 HOT 운달 2011-12-31 481
92 미설(습작) (1) HOT 윤종택 2011-12-20 499
91 미설(습작) (1) HOT 윤종택 2011-12-08 568
90 내게 이런놈 하나 잇엇으면! (4) HOT 신기록 2011-12-07 547
89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witch hunt (1) HOT 윤종택 2011-12-07 563
88 미설(습작) (1) HOT 윤종택 2011-12-02 540
87 진정한 자유인 (1) HOT 신기록 2011-12-02 540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맨끝
 

우.27154) 충북 제천시 청전대로 13 | Tel : 043-643-6677 | Fax : 043-643-7660 | jcmarathon@daum.net
사업자번호: 304-80-02668(제천마라톤조직위원회) 대표자 : 최용환 | 통신판매신고 : 2013-충북제천 -0084호   
농협 351-1032-0390-73 | 예금주 : 제천시육상연맹
Copyright ⓒ 2013 제천마라톤조직위원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