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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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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습작)
 글쓴이 : 윤종택
(조회 : 560)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짙푸른 바다보다 더 아름답다.
군데군데 솜을 붙인 듯 새털구름이 간간히 지나간다. 광식이는 필터도 없는 담배 끝을 집게처럼 잡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후 도랑으로 휙 던졌다.

골짜기는 대낮인데도 응달이 져서 어둑어둑하다. 불쏘시개를 할요량으로 소나무 잎을 긁어 모았다. 청솔가지를 몇 개 잘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마른 소나무잎을 두툼하게 쌓고 그 위에 다시 청솔가지를 올려 흘러내리지 않게 하고 칡넝쿨로 세 군데를 꼭꼭 묶었다. 넉단을 만들어 지게위에 실었다. 시장기를 돈다.

등강 위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연신난다. 고라니나 토끼가 지나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겨울

지난 밤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무릎높이 만큼 수북히 쌓였다.
온동네가 하얗다. 논이며 밭이며 두름봉 참나무 군락지도 온통 하얀색이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광식이는 벌써 일어나 앞마당 눈을 치우고 우물가까지 길을 내고 있다.

박달나무 넉가래로 그저 사람이 마실 다닐 만큼만 뚫어 놓으면 된다. 한 겨울철이어서 리어카나 마차가 다닐리도 없다.
바가지에 아침쌀을 담아 부엌으로 가던 미설은 허리를 구부리고 눈을 치우는 광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는 부엌문을 연다. 가을부터 지금까지 부부간에 대화가 거의 없었다.

미설이 밥상을 차려 놓으면 광식은 순식간에 먹어치우고는 나가 버렸다. 나무를 하기도 하고 토끼 올무를 놓는다고 산으로 줄행랑을 놓기도 하고 그도 마땅치 않으면 윗담 영출네 집으로 마실을 갔다. 영출이는 동갑내기로 이 마을로 이사를 온 후 제일 먼저 알고 지낸 친구다.

자연히 아이들도 눈치만 늘고 집안 분위기는 늘 싸느랗기만 하다. 밤이 되어도 아랫목을 차지한 광식은 벽을 향해 누워 버린다. 미설이 몇 번 팔을 잡아 당겼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광식은 젊은 몸이 꿈틀거릴 때마다 억제하느라 꼬박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미설은 광식이의 이러한 행동을 잘 안다. 다소 우직한 면이 없지 않으나 아이처럼 순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철민 교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시골 무지렁이인 그녀로서는 언감생심 애초에 비교할 대상도 아니었고 황소같은 남편과 자식이 있는데 한눈을 팔 그런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아무리 괴로워해도 형언할 수 없는 이끌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소녀적부터 동경해오던 강렬한 이미지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는 오십으로 열다섯 살 차이다. 서울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학교도 서울서 다녔다. 깨끗하고 깔끔한 도시의 이미지에 모르는게 없는 풍부한 지식을 가졌는데 무슨 사유로 이 산골까지 왔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의 말로는 여자와의 관계가 복잡해서 교육부처에서 멀리 내쳤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과 고상한 성격으로 인해 시골로 자원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 그는 나이에 비해 근력이 훨씬 좋았고 정신적으로도 상대를 흡인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광식이에게서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마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성의 문을 여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으로 다가 오기도 하고 질풍노도의 청년이기도 했으며
창작의 고통에 가슴앓이 하는 머릿결이 하얀 노시인이기도 했다.

아궁이에서 시뻘건 불꽃을 흔들며 지지직거리고 타는 참나무 장작 끝으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생성되는 뜨거운 결과물이다. 훈훈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고 부엌의 공기를 달구어 간다. 연기로 새까맣게 그을은 천장의 서까래가 산골 한 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주위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적막강산이다.

이따금 뒤꼍에서 들리던 굴뚝새의 방정맞은 지저귐도 오늘은 뚝 끊겼다. 미설도 자기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무서움 보다 더 힘든 굴레였다. 지난날 광식이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낼 듯 벌겋게 상기된 눈을 희번덕거리며 동네사람들이 듣던 말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문짝을 때려 부수고 난리를 떨든 그때가 의식적으로는 바득바득 대들었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했다.

부엌 뒷문 여닫이 유리창으로 보이는 희뿌연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꽃을 쏟아낼 듯 회색빛으로 잔뜩 물들어 있다. 뒷동산의 아름드리 낙엽송은 지난밤에 가지마다 솜털 같은 눈을 올려놓았고 드믄드믄 서있는 구갑피를 온몸에 두른 소나무는 마치 소쿠리에 눈을 담아 짊어 진 듯 구부정하다. 치마 속으로 뜨끈뜨끈한 열이 퍼져 온다. 전신이 나른하다.

가마솥 가장자리에서는 숨을 쉬듯 하얀 김이 쉬익 쉬익 거리며 나오기도 하고 물방울이 뽀글뽀글 거리다 터지기도 한다. 밥 냄새가 구수하다. 뜸을 들이기 위해 시뻘건 장작을 당겨 놓고 부삽으로 재를 한 삽 떠서 덮은 후 아궁이 안의 알불을 모아서 질화로에 담았다. 여기다 찌개를 끓이기도 하지만 저녁나절 출출할 때는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밀가루에 김치를 쭉쭉 찢어 넣고 부침개를 부쳐 먹기도 한다. 시골만의 정취이기도 하지만 산골짜기에서는 어느 집이나 그렇게 하고 산다.

두레반상을 펴놓고 반찬을 차리는데 밖에서 발을 탁탁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광식이가 장화에 묻은 눈을 터는 소리다. 미설은 서둘러 상을 본 뒤 안방문을 열었다.

(다음편에 계속)


금수산 11-12-21 10:33
글 언제 올리시나 기다렸어요...
오늘쯤...댓글을 함 달아볼까도 했어요...
재밌게 잘보고있어요...
담편도 기다릴게요..^^------------------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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