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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0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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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습작)
 글쓴이 : 윤종택
(조회 : 539)  

부는 바람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보자기를 펴고 된장찌개와 잘 익은 총각김치를 담아 대각선의 끝을 서로서로 연결하여 골을 내어 잡아 매었다. 성급한 마음이야 벌써 학교 사택에서 맴돌지만 부엌데기 차림으로 갈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뽀르르 방에 들어가 화장대 앞에 앉았다.
 굳이 따지자면 군데군데 낡고 어쩌다 손으로 누를 때 마다 삐거덕거리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앉은뱅이 책상이지만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거울과 지난 장에 시내에서 사온 립스틱과 로션을 구석 한켠에 모셔두고 초등학교 사택에 갈 때 마다 정성스레 치장을 해온 터였다. 미설은 시골에서는 보기드믄 서구형 미인이다.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졌을 뿐 만 아니라 날씬한 몸매에 키도 커서 비록 몸배 바지를 입고 다녀도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마당에서 한 길 아래 학교 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담배밭은 끝물까지 다 땄기 때문에 고랑으로 걸어 다니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담배잎이 너울너울 할 때는 그래도 제 모습 감추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신작로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담배밭 고랑에 자꾸만 발자욱을 찍다보면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리 없다고 결국 소문이 무성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루라도 못 볼라치면 견디기 어려워 곱게 화장을 하고 걸음을 재촉하는 미설의 가슴은 열여덟 소녀처럼 콩닥콩닥 뛰기를 그치지 않았다.

 아까 한낮에는 동네가 훤히 보이는 마당에서 아들인 영일이 또래의 친구들과 한,두 살 터울인 아이들이 예닐곱 명 모여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치기를 하며 놀았다. 자치기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살이 단단한 참나무를 한 뼘 정도 되게 잘라 낫으로 양쪽 끝을 같은 방향으로 대각선이 되게 쳐서 다듬는다. 방망이는 팔뚝길이만하면 넉넉하다.

 시합을 할라치면 가위 바위 보를 하여 두 편으로 나눈 후 자치기의 곱절만한 원을 그린 다음 열 발자국 뒤에 금을 쭉 긋고 진편의 대장이 자치기를 던져서 원안에 들어가면 전세가 역전되어 공격이 바뀌고 원안에 넣치 못하면 가위 바위 보를 이긴 편의 아이들이 계속해서 멀리 처내면 된다.

 대각선으로 깍은 끝부분을 방망이로 톡 치면 자치기가 튀어 오르게 되고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방망이로 맞추어서 멀리 가게 하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반자라는 것이다. 끝부분을 쳐서 튀어 오른 자치기를 쳐내기 전에 제기차기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위로 맞추어 올리면 그 횟수에다 나중에 쳐내서 재는 길이를 곱하게 되는 것이다. 길이를 계산하는 것도 미터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방망이 길이의 갯수로 계산한다. 방망이가 자의 대용이 되는 셈이다. 이겼다고 상을 주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아이들의 집념은 대단하다.

 어쩌다 밭고랑처럼 물렁물렁한 곳에 떨어지면 자치기를 옆으로 옮겨놓고 바닥을 발로 꼭꼭 밟아 단단하게 만든 다음 다시 옯겨서 쳐낸다. 어쩌다 밭주인이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살금살금 들어가 자치기를 가져 나온 후 양쪽의 합의하에 그 거리만큼 딱딱한 길에다 놓고 계속 시합을 한다. 이럴 때는 나이가 제일 많고 힘이 센 대장의 입김이 한몫을 한다. 누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주먹을 옹말아 쥐고 코앞에 들이대면 상대방은 이내 풀이 꺽이게 마련이다.

 뙤약볕 아래서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하는게 아이들의 습성이다. 어떤 때는 엄마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미설은 저녁나절에 아이들을 휘몰아 내쫒다시피 했다. 늘 그렇듯이 토요일이면 학교가 파하자마자 아들과 또래들이 모여 우루루 들이 닥치는데 설령 저지레를 한다고 해도 그저 웃기만 하였다.

 아들한데 대한 미안함이 마음 언저리에 늘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맏이인 영일이는 다섯살 어릴 때 엎어져서 실명이 되었다. 그것도 눈동자가 있으면 다행인데 깊게 함몰되어 보기 흉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붙임성이 있어 친구들과 잘 사귀고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한번은 등교길에 논골에 사는 용진이가 집 앞 신작로에서 달달 봉사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장난하지 말라고 젊잖게 타일렀지만 듣지를 않아서 도망가는 놈을 붙잡아 흠씬 두들겨 주었다. 아예 그길로 작심을 하고 논골까지 찾아가 아들놈 교육 잘 시키라고 부모에게 대판 퍼부은 적이 있었다. 얼마나 서슬 푸르게 난리를 떨었는지 그 다음 부터는 집 앞을 지나칠 때면 용진이 뿐만 아니라 같이 등교하는 그 마을 아이들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삐 길을 재촉하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들놈의 꽹한 눈을 볼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에 속이 새카맣게 타버렸는데 세상에 무엇이 무섭고 두렵겠는가.
담배밭 모퉁이를 돌아서면 국민학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운동장 가장자리로 심은 아름드리 풀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아직도 아이들 몇몇이 모여서 놀이를 하며 재잘댄다. 줄을 긋는 시늉을 하는걸 보면 아마도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듯하다.

 교실 앞을 잰걸음으로 지나치는데 교무실과 교실 사이의 공터에서 4학년 담임 선생인 한성건 선생이 나오면서 능글맞게 실실 거리며 건성으로 인사를 건넨다. 미설은 가슴이 콩닥거리다 못해 온몸의 혈관이 한꺼번에 터져 버릴듯하여 고개만 겨우 구부려 답례를 하고 동쪽 끝에 있는 교장 사택 쪽으로 종종걸음을 하였다. 아마도 한성건 선생의 표정을 보면 무엇인가 아는 눈치다. 하긴 교실 앞을 지나 다닌지가 3개월은 족히 넘었으니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낌새야 모르겠는가.

“선생님. 저 왔어요. 미설입니다.”
“어. 그래. 자넨가. 어서 들어오게.”
미설은 낡은 슬리퍼를 들고 문을 당겼다.

  (다음에 계속)


금수산 11-12-03 14:55
부는 바람을 어찌 막으리요.
다음 기대됩니다.
잠 안자고 기다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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